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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을 보면 '서라벌 10화랑'이라는 이들이 나온다. 그래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봤다. 서라벌 10화랑이 무엇인지... 그런데, MBC드라마 '선덕여왕'의 서라벌 10화랑.....

部曲의 변화 Ⅰ. 序論 우리는 部曲이라고 하면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천민이 사는 향, 소, 部曲을 두었다’라는 글에서 部曲이 인식되어져 있다. 물론 여기서.....


세도가문의 재정적 이익은 토지세와 군포, 환곡이라고 하는 세개의 세금제도(이하 삼정이라고 함)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세도가문은 삼정을 통해서 재정적 이익을 취합하고 있었을까?

근현대사 파트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고3 4월 모의평가에서는 나올수도있겠지만) 그래도 그 배경을 확인해두어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를 파악할 수 있을것이다. 자, 그럼 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저 멀리 조선 전기의 세금제도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고, 조선 후기 17세기에 대통법이 실시되는 것부터 이야기를 하면 수월할 것 같다. 대동법은 공물의 수취를 호역(戶役-국가가 백성의 노동력을 아무 대가없이 강제로 징발하여 부역시키는 세제)에서 토지세로 바꾸었다. 쉽게 이야기하자 세제를 호(戶-가구)단위로 징수하던 것을 토지소유당 세금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대동법은 토지 1결당 4두를 거두어 들였던 것이다. 이때 내던 쌀을 대동미라고 불렀다. 그러나 쌀을 바칠 수 없는 상황인 산간지방이나 대동미를 수송하다가 쌀이 썩어버리는 벽지의 경우에는 쌀을 거두어 들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산간지방에는 베를 바쳤고, 벽지에서는 돈을 바치기도 했다. 그것을 대동목, 대동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제도를 시행해보니 돈이 유통이 참 편하고, 기한도 없는 것 같은 것이라 나중에는 모두 대동전으로 바뀌게 된다.

군역체제는 영조가 균역법을 시행하면서 양인의 군포에 대한 부담이 가벼워졌고, 그러다가 이런 군포 역시도 모두 토지세에 부과하는 것이 세금을 따로따로 거두어야 하는 것에 비해서 낫다고 여겨서 결전, 결작의 형태로 토지세에 합쳐지게 되었다.

환곡제도는 봄철의 보릿고개 시기에 농민들에게 양곡을 대여해주고 가을에 추수하여 이자를 붙여서 되갚는 제도다. 이러한 형태를 봄에 대출해주고 가을에 납부한다고 하여 춘대추납제도라고 한다.

이러한 전정과 군정과 환곡을 합하여 삼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금제도 방식이 총액제, 즉 총액 얼마라고 규정하여 부과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는 양인들이 농사를 잘 지었을때는 문제가 없지만 흉년일 경우에는 갚을 수 있는 방도가 요원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즉, 수확량의 증가와 감소에 따라서 융통성있게 변화하지 않고 무조건 총액만 따져서 다 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전세의 경우는 각종 왠만한 모든 세금이 토지세에 엮여있었기 때문에 관리가 이를 작성하면서 일부 사안을 누락한다 할지라도 상부에서는 도무지 알수가 없다보니 이를 통해서 중간에 착복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군정은 호적을 근거로 양인에게 군포를 납부하게 하거나 군역을 지게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던 것인데 실질적으로 군포를 납후할때 화폐와 면포를 5:5로 납부하는게 원칙이지만 이를 모두 토지세에 부과시켜 화폐로 징수하였다. 더군다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몰락양반이 증가하고 부유한 양인이 등장하면서 호적을 사고파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고, 이로 인해 양인의 수는 줄고 양반의 수가 늘어나는 비정상적인 형태의 사회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소수의 가난한 양인이 다수의 양반의 군역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불공평한 사회가 발생하게되었다.

환곡은 나라에서 직접 양곡을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각 지방 관청에서 독자적으로 스스로 환곡제도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이를 지밪에서 알아서 처리하고 착복하므로써 국가 재정의 궁핍을 가져오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나라의 세금을 세도가문이 중간에서 착복하여 배를 불리는 것을 금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삼정을 개혁하여 나라의 국고를 튼튼히 하면서 동시에 세도가문의 돈중을 꽁꽁 묶어버리기로 하였다.

전정의 경우는 제대로 된 각 지방의 전답에 대한 측량이 미비해서 벌어난 것이라 여기고 확실하고 확고하게 전답을 측량한 양전사업을 통해서 투명하게 거두어들이도록 하였다.

군역은 다수의 양반을 소수의 빈곤한 양인이 부담하는 이러한 모순을 없애고자 양반, 상인을 구별하지 않고 각 가호별로 군역을 부담하게 하여 이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환곡은 중앙 관리기구에서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가 없다면 아예 이를 지방에서 주민이 자체적으로 설치하여 운영하도록 한 방안이다. 그렇게 하면 세도가문이 중간에서 착복을 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 삼정의 개혁은 생각보다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양전사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토지에 묶인 세금이 원체 많다보니 중간에서 결여된 세금을 찾기가 힘들었으며, 군역은 양반에게도 군포를 메긴다는 것은 조선사회 신분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으로서 양반의 반발이 심했으며, 사창제는 아예 중앙관리가 환곡제도에서 손을 뗀다는 것으로서 지방에 관여 안함을 알린 계기가 되어 도리어 지방이 독단저으로 일임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어버렸다.

즉, 삼정의 개혁은 뭐 하나 제대로 바뀐 것 없이 세도가문의 배를 불리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개혁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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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명나게 한판 떠들어보기 游客子